주절 주절/직장인의 날

제 2회 직장인의 날

삼육오우야 2021. 5. 28. 23:39
728x90
반응형

퇴근할 무렵 날이 쌀쌀했다.

오전에 내리던 비가 그쳤지만 온도는 많이 내려간 것 같았고,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냉기에 옷깃을 여미며 퇴근을 서둘렀다.

날도 춥고, 최근 외식도 잦았으니 '그냥 집에 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엔 '직장인의 날'이라는 작은 기념일을 생각하며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고민하던 나날이 기억나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달만에 돌아오는 '직장인의 날'을 기념하는 후보로는

음식이 예쁘게 나오는 곳, 인스타 맛집 등 다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장인의 날'이 먹은걸 자랑하거나, 예쁜 걸 먹는 날도 아니거니와,

오늘 날이 추운 것도 있어서 최종적으로 '순대국밥'을 먹기로 했다.

 

국밥전문점이라는 단어부터 든든해진다.

오늘 방문한 순대국밥 집은 언제 생겼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동네 친구들과 동네 1 티어 국밥집으로 부르며 자주 방문한다.

평소에도 혼자서 국밥을 드시며, 음주를 즐기는 분들이 계시는 곳인데,

오늘은 혼밥술을 하시는 분들이 없어서 난이도가 조금 있었다.

그래도 나름 단골이니까, 약간의 망설임을 뒤로하고 문을 열었다.

 

"순대국밥 하나주세요."

 

국밥 1인분을 주문하자 곧 밑반찬이 나왔다.

원래는 국밥이 나오기 전까지 손대지 않고 있으려고 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소금이 찍힌 간 반쪽이 들려있었다.

 

잠시 뒤 기대하던 순대국밥이 나왔다.

기본에 충실한 순대국밥은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국물을 한 술 떠마시니 느껴지던 추위도,

가게를 들어오기 전의 긴장감도 모두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 그대로 부추와 고추를 넣고 양념장을 풀기 시작했다.

 

"사장님! 맥주도 하나 주세요!"

 

역시 퇴근 후에는 라거

헬스를 시작한 이후 술을 자주 즐기지는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허락했다.

 

최초의 한 잔에 어울리는 최고의 한 입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마신 술에 속은 점점 따스해지고, 기분도 적당히 즐거운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뒷좌석은 가족이 가상화폐의 위험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가족이 모두 같은 의견이었는데 새로운 사람이 말할 때마다

이전 사람의 의견에 대해 부정하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해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장 뒷좌석에선 남편분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내분께서 "내 얘기에 집중 안 하고 있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곧 싸움이 벌어지리라 생각했지만 '무시하기' 스킬로 위기를 벗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하늘은 조금 더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나 순대국밥의 힘일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집으로 가면서 10cm의 '이 밤을 빌려 말해요'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고생한 나에게 얘기했다.

 

"월급 버느라 고생했다."

 

이 시대 직장인 모두 화이팅이다.

'주절 주절 > 직장인의 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1회 직장인의 날  (0) 2021.04.23